2021/07/28NEW

제44회 세계유산위원회 유네스코 결의, 유네스코 이코모스 전문가 보고서에 대하여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
전무이사 가토 코코(加藤康子)

유네스코 결의, 유네스코 이코모스(ICOMOS) 전문가 보고서에 대하여 :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등재된 지 6년,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공개한 지 1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제44회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 및 유네스코 이코모스 전문가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는 많은 약속을 충족시키고 있지만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의 관련 결의를 충분히 실시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보고서에서는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가 「의지에 반해 끌려와 강제적으로 일했던 한반도 출신자의 기재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전제로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전시된 정보를 보면, 타국에서 징용된 노동자는 당시 일본 국민으로 간주되어 일본 국민으로 대우받았다는 인상을 준다 (The information displayed gives the impression that conscripted workers from other countries were considered to be Japanese nationals at the time and were treated as such.)」(유네스코 이코모스 조사단의 보고서)고 되어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릅니다.

현지 조사 중 전문가와의 대화에서 한반도 출신을 POW(전시 포로)라고 표현한 말이 나왔습니다.전문가에게는 한반도 출신은 POW가 아니라고 거듭 지적했듯이, 한반도 출신자는 당시 일본 국민이었고, 국민으로써 징용되었습니다.제2차 대전 중 일본은 전시의 노동력 부족 속에서 국가총동원법(1939년 4월)에 근거하여 1942년 2월부터 조선총독부의 주선으로 한반도 출신 노동자의 모집을 실시하였고, 국가총동원법 하에서 1944 년 9월부터 국민징용령(國民徵用令, 1939년 7월)에 따라 조선인 노무동원을 실시했습니다.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정부 및 시민단체가 배포한 문서를 통해 '하시마는 강제노동에 의해 학살도 자행된 지옥섬이다’ 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고, 남독일신문 등에 사실과 동떨어진 정보가 실리면서 많은 하시마 섬 주민들의 인권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등록 후, 전쟁 전부터 기계화되었던 하시마라는 거대한 해저 탄광에서 전쟁 중에 증산체제를 떠받쳐 온 산업전사들이 어떻게 직장을 지켜왔는지, 사업 현장과 생활이 어떠하였는지 당사자들의 증언과 1차사료를 바탕으로 정확한 전시가 필요했기에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2015년 시점에서 직장의 기억은 충분히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1차 사료는 보관되어 있는 장소가 널리 퍼져있어서 전시 중의 하시마를 아는 당사자들의 증언은, 영상으로 수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6년간 하시마 전 섬주민과 함께 전시 탄광(야마)의 기억, 전쟁 중에도 증산 체제를 떠받쳐 온 직장과 삶의 기억을 모아 왔습니다.출처가 분명한 자료와 섬사람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서로 연결되었고, 기억을 되짚어가며 전쟁 중에 사업현장을 지탱해 온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수록하여 현재 센터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또, 몸이 불편하신 가운데 있는 힘을 다해 전시(戰時)의 사업현장 및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주신 당사자의 목소리는 귀중한 일본의 재산입니다. 전쟁 말기, 일본의 사업 현장에서의 노동은 식량 사정도 나쁘고 물자도 부족하여 상당히 힘들었다는 것은 일기와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전쟁 속에서 하시마의 한반도 출신자는 함께 일하고 더불어 살며, 탄광 전체가 한 가족이 되어 증산 체제를 지탱했다는 것은 전시내용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문가와 우리의 '희생자'의 정의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산업 유산 전시에 사용되는 희생자의 규범에 따라, 출신지에 관계없이 탄광이나 공장 등의 시설에서 전시 중 노무에 종사하는 가운데 사고·재해 등을 당한 분이나 사망한 분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원래 '희생자'의 해석은 사람마다, 나라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희생자라는 말을 일반론에서 다루는 경우 ‘가해자가 누구인가’ 에 대한 논란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에서는 현장에서의 산재와 관련하여 명확한 사고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는, 희생자의 국적에 관계없이, 소개하고 있습니다.신문기사, 수기, 사고기록 등 출처 분명하고, 증거가치가 높은 사료와 증언을 중심으로 아카이브화를 진행하여 전시에 반영해 나갈 예정입니다.하시마 전 도민의 증언이나 일기에 탄광 사고의 리얼한 이야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탄광 사고의 진실도 향후 전시해 나갈 것입니다.

역사해석은「정치」나「운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1차 사료나 증언을 기본으로 전시되어야 하며, 역사적으로는 100명의 연구자가 있다면, 100명의 해석이 있습니다.정보센터의 역할은 정확한 1차 사료를 제공하는 것이며 해석은 각각의 연구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현지 조사시, 국제기관도, 과거의 성명을 준수하기 위해「허위의 전시를 하라고는 할 수 없다」라고 언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유네스코 관계자나다른 견해를 가진 분들과는 신중히 대화를 해 가면서 정치가 역사에 개입하는 악순환을 없애기 위해서도 정확하고 증거가치가 높은 1차 정보와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정보 센터를 목표로 할 것입니다.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성실히 이행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여러분의 협력, 지원 부탁드립니다.

가토 코코 (加藤康子)